'명함없는 40대 싱글녀'는 아니지만, 요즘의 나를 돌아보게 하는 가슴뭉클했던 글
배운녀자 ⑤ 박성혜 전 싸이더스 콘텐츠 본부장
명함 없는 인생, 나는 누구인가?
“뭐 하시는 분이세요?”
최근 들어 사람들에게 이런 난감한 질문을 자주 받곤 한다. 그런데 더 난감한 것은 나조차도 이 질문에 대답하기가 아리송하다는 것이다. 여자 나이 마흔이 살짝 넘어가고, 싱글이고, 게다가 사회생활의 때가 적잖이 묻어나 보이기까지 하면, 무엇인가 뚜렷한 직업을 말해야 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의무인 것 같다.
“그냥, 이것저것 하면서 지내요.”
이렇게 대답하면 상대방의 눈이 바로 옆으로 길게 가늘어지면서, 애써 입 꼬리를 끌어 올리는 모습을 심심찮게 발견하게 된다.
“아…… 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상대방의 눈이 허공을 맴돈다. 나이가 지긋한 상태에서, 구체적으로 자신의 직업을 정의하지 못한다는 것은, 마치 사회적 인간으로서 자격 상실에 존재마저 하찮아진 기분이다. 우리 사회의 거대한 커뮤니티에서 논외자로 전락한 기분이랄까? GDP가 1조 달러를 넘어서고, 세계 15위의 경제력을 갖춘 이 나라에서 생산 도구의 책무를 다하지 못한 ‘잉여 인간’쯤이 사람들이 보는 내 모습일 것이다.
사실 ‘뭐 하고 사느냐’는 질문에 대답을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딱히 못할 이유도 없다. 학교도 나가고 있고, 아르바이트(?)도 하고 있고, 이런저런 단체의 모임에도 기웃거리면서 나의 하루는 언제나처럼 적당히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그러니 분명 나는 ‘뭘 하고 있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다만 예전과 조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사람들이 그럴듯하다고 인정해 주는 사회적 타이틀이 현재의 나에게 없을 뿐이다. 즉, 명함이 없는 인생이다.
분명 예전의 나는 화려한 직함들이 쾅쾅 박힌 다양한 종류의 명함을 지갑 가득 넣고 다녔다. 특히 우리네 일터의 명함은 받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면이 있어서, 다소 분에 넘치는 만족감을 느끼기도 했었다.
‘벤츠’타던 호화로움도 결국엔 허전…모든 걸 버리고 뉴욕 행
‘맨발에서 벤츠까지’라고 했던가? ‘대중문화 키드’였던 나는 당시 일반인에게는 너무나 생소한, 그래서 조금은 특별하게 느껴지는 매니저라는 직업을 흔들림 없이 선택해 나름의 성과를 이루어냈었다. 특히나 여자에게는 상당히 고된 일일 것이라 예상되는, 비릿한 야합과 모략이 있을 것이라는 선입견까지 있는, 연예인 매니저의 세계였다.
내가 처음 연예인 매니저를 시작할 때의 현실은, 매니저가 ‘가방모찌’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현장 진행과 운전 등이 필수였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나는 뻔뻔할 정도로 오랜 시간을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운전 못하는 매니저’로 버티며, 전문 매니저로 성장해 나갔다.
그동안 많은 배우들을 만나 함께 일했고, 몇몇과는 말 그대로 청춘을 함께 한 친구이자 가족 같은 사이가 되기도 했다. 그런 사람들의 믿음을 바탕으로, 나는 남자들의 세계이자 야성적인 동물의 왕국인 연예 비즈니스 세계에서 16년 동안 울고 웃으며, 인생을 배우고 세상을 배웠다. 그리고 그 분야 최고 기업의 수장이 되어 마침내 ‘벤츠’를 모는 행운을 거머쥐기도 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이루었다고 해서 내 존재에 대한 질문이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흔히 생각하는 연예인과 함께 하는 화려한 직업에 대한 환상은, 사실 그곳에 있기도 하고 없기도 했다. 언제나 최고의 환경에서 특별한 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내가 오늘 선택한 것’이 다음날 텔레비전에 나오는 선민적 경험들을 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나는 내 인생에서 내가 주인공이 될 수 없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대한 정체성의 고민을 해야 하기도 했다.
서른아홉의 봄, 그래서 그 모든 것들을 뒤로 하고 나는 다른 선택을 감행했다. 새로운 인생의 전기를 맞이하기 위해, 40대에는 또 다른 인생을 살아 보기 위해 홀연히 뉴욕 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것이다. 내 지갑을 채우던 전리품들, 나의 20대, 30대를 모두 바친 열정과 투쟁이 있었기에 존재 가능했던 화려한 타이틀이 새겨진 명함들은 모두 휴지통에 던져 버린 이후였다. 이제 나는 ‘무엇을 하고 사는 지’가 아닌,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싶었다.
뉴욕에서 보낸 일 년은 내게 생애 최초의 휴지기와도 같은 시간이었다. 살면서 처음으로 바람에 밀려 도망치듯 사라지는 구름 한 조각을 고개를 들어 한참 바라보기도 하고, 각양각색의 인종들로 가득 찬 뉴욕의 지하철에서 동시대 지구촌 사람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여유롭게 살펴보기도 했다. 그곳에서는 명함 부재의 내 상황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그네들은 ‘무엇을 하며 먹고 사느냐?’란 질문 외에도 개인적 취미나 다양한 사회적 이슈들 혹은 공통의 관심사에 대해 풍부한 대화를 즐길 줄 알았다. 나는 그곳에서 나 자신과 충분히 독대하며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진지하게 고민했다.
명함 없는 40대 싱글녀의 절망을 아는가
한국으로 돌아오고 나서 한두 달 쯤 지났을까. 예전부터 잘 아는 분이 오랜만에 술이나 한 잔 하자고 나를 홍대 근처로 불러냈다. 선약이 있어서 조금 늦게 도착한 그 자리에는 그분 말고도 세 명이 더 있었다. 전문 작가로 활동하던 나의 지인은 또 다른 작가 한 명과 출판사 사장, 독립영화 감독을 차례로 소개시켜 주었다.
나는 그냥 ‘친구’로 그들에게 소개되었다. 술자리가 무르익으면서 출판사 사장이라는 남자가 나에게 ‘무얼 하는 분’인지를 지치지도 않고 계속 물어왔다. 당시에는 정말로 시작한 일이 없어 마땅히 대답할 거리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왕년에…”로 시작하는 소싯적 이야기를 하는 것도 내키는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냥 실실 거리면서 계속 무시하고 앉아 있었다. 그러자 그가 매우 흥미로운 발언을 했다.
“뭐 하신다고 했죠? 아, 하는 일이 없다고? 결혼도 안 하셨고? 나 참. 나는요, 신분이 불확실한 사람과는 말하고 싶지 않아요. 뭐 하는 지도 모르는 사람하고 무슨 말을 해? 이봐요. 여기는 작가, 여기는 감독, 나는 출판사 사장. 다 신분이 확실하잖아요.”
그러면서 그는 본인의 명함을 꺼내 내 눈앞에서 팔랑팔랑 흔들었다. 그리고서는 마지막 한 방.
“어디 내가 아는 괜찮은 형님 하나 소개 시켜 드릴까?”
명함이 없고, 당장 하고 있는 일이 없다고 해서 나는 졸지에 ‘신분이 불확실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나를 초대한 지인이 당황하며 불쾌한 기분을 드러냈지만, 그의 ‘신분이 불확실한 사람과는 대화하지 않겠다’는 대쪽 같은 신념은 끝내 누그러뜨릴 수 없었다. 나는 화조차 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사회적 위치(Social position), 직업(Job), 소속(Post)이 정의되기 어려운 40대 여자 싱글에 대한 이 사회의 통념이 얼마나 절망적인지 처음으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내가 연예인 매니저로 일하던 시절에 사람들이 가장 흔히 하는 질문은 ‘여자 몸으로 힘들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이후 내가 조직의 관리자가 되자 그 질문은 자연스럽게 ‘드센 남자들을 관리하기에 여자로서 어렵지 않느냐’로 바뀌었다. 하지만 나의 대답은 한결같이 ‘아니오’였다. 대다수의 업계 사람이 남자인 집단에서 여성 특유의 섬세한 업무수행능력과 유연한 대인관계 형성 능력은 오히려 장점이었다. 내가 그런 말을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 말에 공감하는 듯 ‘대단하시다’ 같은 공치사를 늘어놓았다. 설사 그런 반응이 아니라 하더라도 사람들은 충분히 예의 있게 행동했고, 적당한 상식선의 태도를 유지했다. 내가 명함을 가진 사람이었던 시절에는 어쨌든 그러했었다.
슈퍼우먼들의 새로운 행복에 관하여
일하는 여자들, 소위 ‘우먼파워’로 비춰지는 여자들에게만 이 사회는 관대해 보인다. 독신은 하나같이 멋들어진 ‘싱글 라이프’를 추구하는 골드미스로 포장되고, 나이는 연륜과 여유의 긍정적 덕목이 되기도 한다. 노처녀의 대표적 특징으로 과장 광고 되어 있는 신경질적인 성질조차 뚜렷한 주관과 카리스마로 이해해 주는 너그러움마저 지녔다. 강한 여자가 아름답고 그 강함은 여자의 사회적 위치로 결정되고 구분지어 진다. 그리고 이렇게 사회적 신분(?)이 확실한 여자들에게 남자들은 ‘친한 형님 하나 소개 시켜 주리?’와 같은 친절한 제안을 결코 쉽게 하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이 사회는 여자들에게 자신의 이름 앞에 무엇인가 멋진 훈장을 하나씩 달아야 한다고 끊임없이 강요한다. 슈퍼우먼이 되어라, 멋진 훈장 하나 없이 독신으로 나이 들면 지는 거다, 승자독식의 세상에서 루저로 전락할 수 있다 등 계속해서 경고음을 울려댄다. 마치 품질을 보장할 수 없어 구입을 망설이게 되는 ‘브랜드 없는 옷’처럼 될 지도 모른다고 계속 광고하는 것 같다. 각종 매체들은 연일 지면을 ‘골드 미스’에 관련된 기사들로 채우며 ‘최초’, ‘최고’임을 내세우는 여성들의 성공신화만을 조명한다.
물론 여성 인재의 중요성이 확산되고 사회 각 분야에 여성의 진출이 더욱 활발해져서 똑같은 기회와 권리가 보장될 수 있다면, 그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그리고 그것이 각 분야의 뛰어난 여성 인재들이 만들어낸 결과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반가운 일임에 틀림없다. 다만 이러한 긍정적 측면들이 지나치게 마케팅적으로 이용되어 우리 사회에 성공에 대한 잘못된 이데올로기를 형성하는 것이 걱정될 뿐이다. 이렇게 한쪽 측면만 부각되다 보면 상대적으로 반대에 있는 사람들, 나이 들고, 독신이고, 독보적인 사회적 위치를 확보하지 못한 평범한 여자들은 평가절하 될 수밖에 없다.
최근 만나게 된 친구들 중에 ‘활동가’라는 직업을 가진 친구들이 있다. 이들은 한 가지 이슈가 아닌 다양한 사안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직접적으로 개입하여 새로운 담론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다. 또 다른 친구는 분당에서 자그마하게 텃밭을 일구면서, 본인의 전공을 살려 동네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치고 있다. 문화와 예술을 아이들의 시선에서 가르치며, 아이들이 창의적 소양을 가진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힘쓰고 있다. 이들은 사회적으로 내세울 만한 직업도, 명함도 한 장 가지고 있지 않지만, 그 누구의 성공한 인생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만큼 멋진 인생을 살고 있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성공한 사람들이 이제는 인생의 다른 면에 관심을 기울이는 경우도 많다. 동물보호단체 중에 카라(KARA)라는 곳이 있다. ‘인간과 동물이 다 같이 공존하는 세상’을 모토로 대중들의 동물보호에 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곳이다. 영화감독 임순례 감독이 회장을 맡고 있는 탓인지 문화예술계 종사자 회원이 비교적 많다.
어느 날, 가수 이효리가 카라에서 개최한 전시회에 홀로 느닷없이 찾아왔다. 평소 유기견과 길고양이에 관심이 많았던 그녀가 생명존중과 환경에 대한 관심을 이제 본격적으로 표출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다음은 배우 김혜수였다. 그녀는 내가 무심코 건네준 동물보호 무크지 <숨>을 읽고, 바로 카라를 찾아왔다. 이효리와 김혜수 두 사람 모두 가요계의 디바와 최고의 영화배우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 붙는, 각자의 분야에서 최고의 성공을 거둔 스타들이었다.
“나 개인의 영광도 중요하지만, 이제 주변의 가치 있는 것들을 둘러 볼 수 있는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
이효리가 작년 연말 자선바자회에서 한 말이었다.
“이렇게 의미 있는 일에 동참하게 된 자체가, 저에겐 무엇보다 큰 의미입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행복감을 느낍니다.”
15년 동안 매니저와 배우 사이로 많은 영광스러운 순간을 함께 했던 나조차 놀랄 정도로 김혜수는 상기된 얼굴과 반짝이는 눈빛으로 카라의 봉사활동 장소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제 그녀들은 직업적 성공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지’에 대해 자유롭게 생각하고 그 해답을 얻고자 하는 모습들이었다. 이 두 슈퍼우먼들은 사소한 일상에서 찾는 소소한 행복의 가치를 알아가고 있는 듯 했다.
성공의 얼굴은 결코 하나가 아니다
이십대의 내 목표는 확실했다. 엔터테인먼트 시장에서 매니저로 성공하여 여자 매니저 역사에 큰 획을 긋는 것, 그리하여 부와 명예를 가진 그럴 듯한 위치에 올라서는 것이었다. 그 꿈 자체가 허황되었다거나, 목표 설정이 속물적이었다고 스스로를 폄하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두 살, 네 살 배기 남매를 홀로 키우신 어머니의 헌신과, 대학 4년 내내 장학금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끊임없이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던 나의 학창시절, 그리고 매니저로 울고 웃으며 투쟁하듯 보냈던 내 젊은 날에 대한 보상이자 보답과 같은 것이었다.
학창시절 나는 학우인 고 강경대 열사의 죽음으로 학교와 학생 모두가 추모 분위기에 휩싸여 있을 때도 시위 한 번 참여하지 않았을 정도로 일찌감치 스펙 쌓기에 여념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로도 스크린 쿼터, 연예계 X파일 등 내 밥그릇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이슈들 외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렇게까지 해서 차지한 완장들이었건만, 결국 마음에 욕심만 가득하여 성공에 대한 집착 속에 살아온 나 자신의 모습만 발견할 뿐이었다.
‘헛되고 헛되니, 헛되고 헛되도다.’
어디 나뿐일까. 주변의 여자 연예인들, 제작자, 프로듀서 등 20대 사회 초년생들이 부러워 마지않는, 언론에 젊은 여성들의 롤모델로 소개될 만한 이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단지 타이틀이 주는 행복감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고, 성공의 짧은 기쁨이 지나가고 나면 훨씬 긴 시간을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가?’ 하는 존재의 문제와 부딪혀야 했다.
언론에서 말하는 성공한 여성상 따위에 집착해서, 자신의 이름 앞에 붙는 타이틀 때문에 삶의 소중한 가치들을 희생시키는 삶을 살지 않기를 바란다. 내 이름 앞에 붙은 타이틀들은 필요에 의해 일정 기간 동안 잠시 쓰이고, 곧 사라져 버릴 것들이다. 나의 가치관이나 인성, 신분 혹은 나를 평가하는 가치의 기준이 결코 아니다. 언론에서 떠드는 성공한 여자의 기준은 다분히 소비와 허영을 자극하는 마케팅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어서, 드러내고 자랑할 만한 무언가를 꼭 하고 살아야 하나 보다 그런 생각이 들지만, 여기서 ‘그 무엇’ 뒤에 숨겨진 뜻을 잘 파악해야 한다. ‘그 무엇’은 누가 정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치 있는 인생을 바라는 사람의 진정한 자기 성공은 ‘무엇을 하고 사는 지’가 아닌,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할 때 비로소 가까워진다.
직업만 들어도 혹은 직함만 들어도 성공한 사람의 냄새가 폴폴 풍기는 그런 이름들이 있다. 물론 많은 노력을 통해 비로소 얻게 된 자리이겠지만, 지금 내가 그 자리에 앉아 있지 못하다고 해서 결코 내 인생이 비루하다거나 초라한 것은 아니다. 버젓한 명함 한 장 없는 소박한 인생이라거나, 한 장의 명함으로 간단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모호한 일을 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우리말 사전은 성공의 의미를 ‘뜻을 이루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사람마다 각각의 생김새가 다 다른 것처럼 우리 모두는 저마다 이루고자 하는 꿈이 다 다르다. 세계적인 소설가이자 철학자인 알랭 드 보통은 성공을 주제로 한 2009년 TED 강연에서 “어떤 성공이든 대가로 잃는 게 있기 마련”이라며 “진정으로 원하는 성공이 무엇인지 깨닫고 스스로 성공을 설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7cm*11cm짜리 종이에 우리의 인생을 저당 잡힐 필요가 없는 이유이다. 마지막으로 최근 내가 자주 읽으며 위안을 얻고 있는, 미국의 사상가이자 시인인 랠프 월도 에머슨의 글을 옮기며 이 글을 정리하고자 한다.
성공이란 무엇인가?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
현명한 이에게 존경을 받고
아이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
정직한 비평가로부터 찬사를 듣고,
친구의 배반을 참아내는 것.
아름다움을 식별할 줄 알며,
다른 사람의 좋은 점을 알아보는 것.
건강한 아이를 낳든,
한 뙈기의 정원을 가꾸든,
사회 환경을 개선하든,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자신이 한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하나의 다른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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